그리운 고스톱 고스톱 / 고경옥 명절이면 시집, 장가 간 삼 남매 모두 모여엄마 옆에 동그랗게 앉아고스톱을 치던 때가 있었다두레밥상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듯화투 패를 반듯하게 나누던 밤엄마, 남동생, 신랑 그리고 뭣도 모르면서광이나 피를 팔려고 끼는 초짜가최대한 심오하게 불을 지피던 시절이다 어머니 똥 싸셨어요자네 죽었구먼넌 피박이야 언뜻 들으면 살벌하고 버릇없는 말들이었지만그저 재미있고 우스워서까르르 방바닥을 두드리며 웃었다생밤보다 하얗게 윤기 나던되돌리고 싶은 그 밤,손맛 듬뿍 밴 감주와따뜻하게 데운 전을 연신 내오던작은올케도 마냥 푸르렀었다 동백나무 꽃을 살피러베란다를 오가며 빙글 웃으시던 아버지는먼 하늘나라 몇 고스톱 번지에서 여전히꽃들에게 물 주고 계실 테고구순이 넘은 엄마는 이제그 좋아하던 고스톱을서서히 잊어 가고 있는 중이다 어깨를 기울이고 둥글게 앉아빠진 배꼽 잊은 채 웃는 모습들을 떠올리자베란다를 오가던 아버지 발걸음 소리가풍경 소리처럼 댕강 귓가로 스민다 고경옥, 『눈 내리는 오후엔 너를 읽는다』, 천년의 시작, 2024, 14~15쪽 시에 관해서 얘기를 꺼낼 때,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얘기가 ‘어렵다’나 ‘난해하다 ’입니다. 예, 어려운 시, 난해한 시들도 많습니다. 일부 시인들은 일정 수준이 되는 시를 읽기 위해선 시를 배워야 한다고 얘기하니, 시가 어렵고 고스톱 난해하다는 얘기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시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니며, 어려운 시가 꼭 좋은 시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쉽고 평이하지만, 감동을 줄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난해한 문장을 쓰는 것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법일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요즘 저는 시인의 시처럼,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시가 좋습니다. 저의 과거를 살펴보면 처음 시를 썼던 삼십 대와 비교하면, 시를 읽고 쓰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를 ‘나이 듦’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고, 내가 고스톱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조금 더 분칠해서 얘기하자면, 사람들의 삶에 귀 기울이려 노력해온 내 삶의 태도가 시인의 삶, 그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나가려는 시에 눈길을 가게 만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소개한 시는 어떻게 읽으셨나요. 제가 요즘 소개하는 시들은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두지 않습니다. 가능하면 잘 읽히고, 잠깐이라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를 소개하려고 노력합니다. 블로그를 시작할 초창기만 해도 은유와 묘사가 좋은 시들을 주로 소개했는데요, 네가 사십 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에도 정답이 없듯, 고스톱 시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물론 등단하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의 모범답안을 찾으셔야 할 것입니다. 모범답안을 잠시 말씀드리면, 은유와 묘사를 바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지만, 심사위원을 혼란케 하는 있음 직한 시를 쓰는 것입니다. 그러면 등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있음 직함 속에 아무런 알맹이가 없는 경우도 많지만, 꽤 괜찮은 문예지로 등단을 하려면 그렇게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등단은 일종의 전투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적절한 위장 전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좀 우습고, 아이러니 한 고스톱 일이지만요. 오늘 시는 화투와 관련된 시인의 추억담입니다. 과거 자신의 어머니 아버지 정도의 나이가 된 시인이 화투를 치던 즐거운 한때를 시로 옮겨 놓은 것이죠. 이 시를 읽으면서 저는 화투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제 나이 때의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아내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딱 지금 자기 나이 때 어머니는 자신을 며느리로 얻으셨다고. 생각도 못 한 일이었는데요, 시간을 되돌려보니 정말로 그랬습니다. 부모님 나이 50대 초반에 아들이 결혼하여 손녀를 안겨다 드렸죠. 부모님의 지나간 시간을 뒤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은, ‘나도 그리 고스톱 멀지 않았구나’ 하는 것입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나도 금방 부모님의 나이가 될 것이고… 그때까지 내가 살아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고경옥 시인의 시집잠깐 화투 얘기를 할까요. 근래에 화투를 치는 사람을 보지는 못했습니다. 장례식장을 가도 바쁘게 조문하고 되돌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고, 명절엔 시골집에 많은 친척이 모였었는데, 몇 해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에는 삼 남매가 전부입니다. 한때 어느 집이든 비상식량처럼 화투 하나씩은 있었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화투가 민속놀이는 아니지만, 민속놀이처럼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는데요 우리 집 고스톱 아이들은 화투가 뭔지도 모를 것입니다. 민화투, 고스톱, 고도리, 청단, 홍단, 비광, 파투 … 이런 용어들이 화투판에서 흔히 사용되던 단어입니다. 게임 방법은 민화토와 고스톱이 양강체제를 이루고 있었는데요, 민화토는 점수와 상관없이 패가 다 돌아갈 때까지 게임을 하는 방식이었고, 고스톱은 일정 점수가 나면 멈출 수도, 한번 고를 외칠 때마다 점수가 배로 올라가는 게임이었습니다. 재미로 하는 경우가 많아서 바둑돌을 토큰처럼 사용했었는데요…. 이제는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 하나하나 추억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이 꽤 많습니다. 시 쓰는 주영헌 드림.